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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 속에서도 피어나는 생명의 지혜, 만병초의 겨울나기
혹한 속에서도 피어나는 생명의 지혜, 만병초의 겨울나기
자연식물원2025-03-05

백두대간 고산식물의 월동 과정, 잎의 쳐짐과 말림으로 드러난 생존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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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백두대간수목원 내 만병초 개화 (사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제공)

[환경과조경 이형주 기자] 만병초의 겨울철 잎 움직임이 극한 환경에서도 생명력을 유지하는 식물의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준다.

산림청 산하 한국수목원관리원은 백두대간을 대표하는 고산식물이자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상징인 만병초의 월동 현상을 상세 관찰한 결과를 12일 발표했다.

 

만병초는 진달래과 진달래속에 속하는 아름다운 상록수로, 한국에는 만병초(Rhododendron brachycarpum D.Don ex G.Don)와 노랑만병초(Rhododendron aureum Georgi) 두 종이 자생하며, 이들 모두 멸종위기 등급식물로 지정되어 있다.

 

여름에는 화려한 무더기꽃을 피우지만, 겨울철 생존 전략에 대해서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는 지난해 초겨울부터 올해 1월까지 잎이 푸른 채 겨울을 나는 만병초의 모습을 세심하게 관찰해 왔다.

 

겨울정원을 거닐다 보면 만병초 잎이 아래로 축 처지거나 잎 뒷면이 말려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만병초가 월동 준비 과정에서 나타내는 여러 변화 중 일부다. 1880년 찰스 다윈이 최초로 기록한 바와 같이, 빛과 수분, 온도가 식물의 잎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면 두 가지 뚜렷한 움직임이 관찰된다.

 

첫째, ‘잎의 쳐짐’ 현상은 강한 햇빛으로부터 잎을 보호하기 위한 자연스런 반응이다. 겨울의 추운 날씨에 잎을 수평으로 유지하게 되면 강한 햇빛으로 인해 잎이 손상되고 광합성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이때 잎자루 내부의 세포 내 압력인 팽압이 떨어지면서 잎이 아래로 축 처지게 된다.

 

둘째, ‘잎의 말림’ 현상은 잎의 쳐짐과는 다른 기작으로 발생한다. 영하의 날씨에서는 잎 표면과 내부에 얼음이 형성되는데, 이로 인해 세포 사이에 얼음이 끼게 되면 수분이 세포 밖으로 빠져나가 팽압을 잃게 된다. 그 결과 잎의 형태가 변형되어 잎 뒷면이 말리게 되는데, 이는 잎 뒷면에 위치한 기공을 통해 수분이 더욱 쉽게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기회가 되면 밤새 말린 만병초 잎들이 오전 시간에 다시 원래의 형태로 펼쳐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으며, 때로는 1분 내에도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는 아침에 말린 채 늘어진 잎들이 오후가 되자 생기를 되찾으며 활짝 펼쳐지는 모습을 기록했다(2024년 12월 17일).

 

그러나 모든 만병초 종류가 일관되게 이 두 가지 현상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 약 600종에 이르는 만병초들은 종마다 변화의 정도가 다르며, 일부 종은 아예 잎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겨울철 만병초의 잎 움직임은 수분 스트레스에 민감한 종이 아닌, 오히려 스트레스에 적응해 내성을 가진 종들에게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는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식물이 보여주는 유연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관계자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겨울나기를 이어가는 만병초를 관람할 때, 찰스 다윈이 최초로 기록한 잎의 쳐짐과 말림 현상을 다시 한 번 떠올린다면, 초라해 보이는 잎들이 단순히 시든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지혜로운 전략을 펼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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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만병초 개화 (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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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초 겨울 직전 모습 (24.11.19, 기온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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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만병초 모습.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어 밤새 잎의 쳐짐과 말림 현상이 나타남(24.12.17오전, 기온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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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만병초 모습. 오후가 되자 쳐지고 말린 잎들이 다시 되살아 남(24.12.17오후, 기온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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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의 만병초 모습. 영하 10도 이하의 추위에 잎들이 수직으로 쳐지며 완전히 말려버림(25.01.09, 기온 –10.6℃)

출처 : 환경과조경 이형주 (jeremy2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