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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일 금강초롱, 빙하식물 만년석송 사라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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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식물원2021-02-03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기후변화 멸종의 위기, 빙하기 식물을 찾아서] 1만2천 금강산 봉우리 중 한 곳 1천m 고산서 겨우 사는 기후변화지표종 강원 고성 향로봉 일대에 자생하는 기후변화지표종 만년석송. 고성/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금강산 1만2천개 봉우리 가운데 몇 개는 남한에 있다. 지리산에서 출발하는 백두대간 종주의 마지막 길인 강원 고성군의 향로봉(1293m)이 그렇다. 금강산의 산줄기가 끝나 다시 설악산으로 치솟는 사이를 강원 인제군의 북천이 흐른다. 북천의 물길은 금강과 설악의 경계를 내달린다. 남한에서 접근 가능한 최북단 고산인 향로봉엔 빙하기 때 한반도로 내려와 자리잡은 ‘빙하기 식물’이 산다. 이들은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생물종이다. 지난 10월7일 <한겨레>는 국립수목원 조사팀과 공우석 경희대 교수(생물지리학) 등과 함께 향로봉에 올랐다. 지난 6월 한라산에서 시작해 설악산과 지리산, 연천·홍천의 풍혈을 찾은 ‘빙하기 식물을 찾아서’ 연재 취재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기후변화 영향은 전 세계가 동일하다. 북한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환경부와 기상청이 지난 7월 발간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을 보면 한반도 평균 온도는 1912~2017년 1.8도 올랐다. 전 지구 평균 지표 온도가 1880~2012년 0.85도 상승한 것의 두 배가 넘는다. 북한의 기후변화는 더 뚜렷하다. 북한 연평균 기온상승 속도는 10년에 0.45도로, 남한의 0.36도보다 1.3배 빠르다(2018년 환경정책평가연구원). 지난 2003년 공개된 북한 기상수문국 기상연구소 자료를 보면, 1918년 이후 평양과 원산은 각각 1.6도, 1.1도 올랐다. 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 알려진 중강진은 무려 3.1도 올랐다. 내륙일수록, 북쪽으로 갈수록 이런 경향이 심하다. 북한 생물이 겪는 기후변화 영향은 그만큼 더 크다. 기후변화가 본격화하면 한국 사람으로선 아예 볼 수 없게 되는 동식물도 있다. “‘적색목록’ 북한판엔 남한에 없는 종이 100종가량 된다”고 이날 취재진과 동행한 공우석 교수가 설명했다. 적색목록은 세계자연보전연맹이 절멸 우려가 있는 취약종 등을 정리한 것이다. 향로봉엔 이들 북한 식물 일부가 살고 있다. 강원 고성 향로봉 정상에서 북한 금강산 방향을 바라본 모습. 고성/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종이 아닌, 속 자체가 사라진다 향로봉에 가려면 강원 인제군 북면에 자리잡은 진부령을 통해야 한다. 전날 국립수목원의 디엠제트(DMZ)자생식물원에서 1박을 한 취재진은 이날 아침 일찍 식물원을 나서 진부령으로 향했다. 식물원은 강원 양구군 해안면에 있는데, 해안면 곳곳에서 북한 기후변화의 일단을 엿볼 수 있었다. 이곳에선 인삼, 시래기 같은 농사도 짓지만 최근 10년 사이 사과가 한창이다. 1960년대까지 대구가 주산지였던 사과는 기후변화로 생육 한계선이 빠르게 북상했다. 양구지역 사과 재배면적은 2005년 15헥타르에서 2017년 125헥타르, 2018년 150헥타르를 거쳐 지난해 193헥타르로 크게 늘었다. 수년 전 경북지역 20여개 사과 농가가 단체이주하는 일도 있었다. 사과 재배면적이 늘자 양구군은 2017년 해안면 내에 30억원을 들여 사과선별장을 지었다. 올해엔 190여개 농가가 3500t을 생산해 지난해보다 500t 늘었다. 우리나라 전체 사과 재배 면적이 올해 3만1601헥타르를 기록해 4.1% 줄어든 것과 반대로 간다. 기후변화가 지속하면 사과 재배지는 결국 북한으로 옮겨갈지 모른다. 강원 고성 향로봉 일대에 자생하는 만년석송(왼쪽)과 눈측백나무(오른쪽). 둘 다 기후변화지표종인 ‘빙하기 식물’들이다. 고성/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진부령에서부터 비포장 산길을 덜컹이며 한 시간가량을 차로 올랐다. 이곳부턴 민간인 통제 지역이라 군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산림청 양양국유림관리소 소속 향로봉 생태관리센터 모니터링요원들이 산길을 동반하며 향로봉 식생에 대해 설명했다. 향로봉엔 돌나물과인 기린초, 애기기린초가 양구에까지 걸쳐 있었다. 전체가 흰 솜털로 덮여 한국의 에델바이스로 불리는 ‘솜다리’들이 대규모 군락을 이룬 국내 최대 자생지이기도 하다. 고산서 자라는 상록침엽수인 분비나무의 국내 최북단 서식지이며, 잎을 따 먹기도 하는 은분취, 수리취도 곳곳에 있었다. 한국에만 있는 특산속인 금강초롱과 ‘국보급 희귀식물’로 불리는 개느삼, 중국에선 흔하지만 한반도에선 이곳에만 있다는 야생자두도 자생한다. 동행자가 “금강초롱과 개느삼은 (기후변화로) 종이 아닌, 속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고 했다. 금강초롱꽃속의 경우 전 세계에 2개 종이 있고, 개느삼속은 개느삼 한 종만 있는데 3개 종이 모두 한국에만 있다. 강원 고성 향로봉 일대에 자생하는 솜다리. 고성/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산 정상에 이르러 차에서 내렸다. 멀리 속초 시가지와 동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정상부엔 ‘한아름 산악회’가 1992년 5월3일부터 그해 8월15일까지 전남 여천군 화양면에서부터 이곳까지 ‘반쪽’ 국토 종주를 했다는 기록을 새긴 비석이 서 있었다. 이 비석 옆으로 광복 50주년을 맞아 지난 2000년 누군가가 ‘통일기원백두대간 종주’를 했다는 내용의 기념비가 나란히 섰다. 북쪽을 등지고 선 비석들 뒤로 금강산을 비롯한 북한의 산줄기들이 시야 끝까지 펼쳐졌다. 거대한 철책마냥 248㎞ 길이로 동서로 뻗은 비무장지대(DMZ)가 산줄기들 앞에 버티고 섰다. 디엠지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2㎞씩 4㎞의 폭으로 한반도의 동서를 가른다. 끝나지 않은 전쟁이 사람들의 접근을 막은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았다. 2014년 환경부 조사 결과를 보면, 디엠지 일원에는 1106종의 멸종위기 생물을 포함해 5097종의 생물이 서식한다. 면적 기준 1.6%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 전체 생물종의 13%, 멸종위기종의 43%가 산다. 괜히 ‘생태계의 보고’가 아니다. 향로봉의 식생도 이 디엠지의 생명력에 기대고 있다. 한국 특산종인 금강초롱. 금강초롱꽃속은 전 세계에 2개 종이 있는데, 모두 한국에 있다. 고성/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오직 금강산에서만 자라는 일행은 정상에서 다시 진부령으로 내려오며 각종 식물의 군락지를 살폈다. 한라산이나 지리산 같은 고산에서 자라는 양치식물인 만년석송이 모여 사는 군락지는 차에서 내려 길도 없는 산비탈을 10m쯤 걸어 올라간 곳에 있었다. 부들부들한 감촉의, 아주 작은 ‘미니어처 소나무’들이 수풀을 헤치고 난 비탈면에 앙증맞게 모여 있었다. 동행한 국립수목원 안종빈 연구원을 비롯한 일행들이 “이런 대규모 군락은 처음 본다”며 놀라워했다. 안 연구원은 “만년석송을 인공 증식하려면 습도 유지가 필요해 안개분수 같은 장치를 써서 계속 수분을 공급해줘야 한다”고 했다. 만년석송 군락지 옆 바위 틈으로 풍혈(바람구멍)지에서처럼 냉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1천m가 넘는 고산의 냉기에 의지해야 겨우 사는 작은 소나무들은 이대로 기후가 변화하면 한반도에선 찾아보기 힘들 게 되는 기후변화지표종이다 강원 고성 향로봉에서 바라본 인근 산불 피해 지역 모습. 고성/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금강인가목 같은, 저 금강산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식물도 있어요.” 일행 중 누군가가 금강인가목 이야기를 꺼냈다. 장미과인 금강인가목은 전 세계에서 오직 한반도 금강산에서만 자라는 특산식물이다. 1917년 미국인 식물채집가가 반출해 미국 하버드식물원을 거쳐 1924년 영국 에든버러식물원으로 보내 증식됐다. 훗날 미국 개체가 죽어버려 북한을 제외하면 영국에만 남았다. 국립수목원이 2012년 에딘버러식물원을 통해 분양 받아 증식 연구를 하고 있어 이젠 한국에도 서식한다. 불과 수십㎞ 앞 금강산을 두고 지구 반대편에서 종자를 받아와야 했던 한반도 특산종의 사연이 기막혔다. 하지만 인류가 초래한 기후변화로 일어날 식생의 변화가 식물들에겐 더 기막힌 노릇인지 모른다. 공 교수는 “기후변화로 함백산 분비나무의 3분의 1이 사라졌는데, 향로봉(분비나무들)도 조만간 어찌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난해 4월 강원도 산불 때 불타버려 일대가 전부 민둥산으로 변해버린 피해 지역이 덜컹이는 산길을 가는 내내 먼 곳에서 위협하듯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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